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평일 낮 카페에서 새로운 ‘나’와 마주하다

퇴사하고 처음으로 평일 낮에 카페에 갔다. 이상하게 집 안에 있기가 답답했던 날이었다. 어디론가 나가야 할 것 같았고, 조용히 내 생각을 정리할 공간이 필요했다.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카페. 평소라면 회사 끝나고 겨우 저녁 시간에 들렀을 법한 곳인데, 이제는 한낮에, 사람도 많지 않은 시간에 앉을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이상하게 느껴졌다. 자리를 잡고 앉았다. 창가 자리. 햇살이 테이블 위로 조용히 내려앉았다. 주변엔 엄마들 둘 셋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, 한쪽 구석에선 노트북으로 무언가 작업하는 프리랜서 같아 보이는 남자도 있었다.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. ‘이 사람들도 매일 이렇게 사는 걸까?’ 핸드폰을 내려놓고, 커피잔을 천천히 들었다. 딱히 해야 할 일은 없었지만, 그 순간만큼은 오랜만에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. 카페에 가득한 잔잔한 음악,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, 익숙하지 않은 여유. 그 속에 내가 있었다. 예전 회사에 다닐 땐, 카페는 늘 ‘틈새’였다. 누군가를 기다리며, 회의 전 시간 때우며, 퇴근 전에 한숨 돌리기 위해 잠깐 들르는 공간.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. 이제는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그 공간에 앉아 있다. 종이컵에 적힌 내 이름을 바라보다가,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. ‘나는 지금, 나를 다시 알아가는 중이구나.’ 퇴사 후에는 뭔가 엄청난 걸 해야 할 줄 알았다. 창업을 하든, 여행을 가든, 책을 쓰든. 하지만 오늘 이 순간처럼, 그저 평일 낮에 카페에 앉아 천천히 숨을 쉬는 일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일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. 아직은 가끔 불안하고, 종종 외롭지만 오늘 같은 날이 늘어가면, 나도 조금씩 익숙해지겠지.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이 조용한 오후들이 결국엔 나를 회복시키는 시간이 될지도 모르니까. 카페를 나서며, 햇살이 따뜻하게 등을 밀었다. 그게 마치, “이대로 괜찮아”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.   퇴사 후 처음으로 울...

퇴사후 월급날, 알림이 오지 않았다

매달 25일 아침이면 자동으로 울리던 알림이 있었다.

‘급여가 입금되었습니다.’
그 문구를 확인하는 건 늘 잠결에도 반가운 일이었다.
아무리 힘든 한 달을 버텼더라도, 그 순간만큼은 조금 숨통이 트였다.
그 돈으로 카드값을 갚고, 대출이자를 내고, 남은 돈으로는 작은 위안을 샀다.
그렇게 반복되는 월급날은, 내 삶을 간신히 붙잡아주는 끈 같았다.

그런데 오늘, 그 알림이 오지 않았다.
스마트폰 화면은 조용했고, 진동도 없었다.
당연히 없을 걸 알면서도 괜히 기다리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스웠다.
습관이라는 게 이렇게 큰 힘을 가진 건가 싶었다.
마치 내 존재를 확인해주는 ‘도장’ 하나가 빠진 것 같았다.

침대에 앉아 멍하니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
통장 앱을 열어봤다.
잔액은 변함이 없었다.
어쩐지 숫자가 더 차갑게 보였다.
나는 이제 ‘월급쟁이’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실히 느껴졌다.

퇴사를 결심할 때는 자유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.
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,
출근길의 피로와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.
그게 내게는 가장 큰 해방처럼 보였다.
하지만 정작 이렇게 첫 월급날을 맞이하니,
자유보다 불안이 먼저 마음을 채웠다.

이제는 누가 내 계좌에 돈을 넣어주지 않는다.
앞으로 벌어야 할 돈, 채워야 할 시간,
그게 다 나 혼자 책임져야 하는 현실이라는 게
오늘만큼 또렷하게 다가온 적이 없었다.

한숨이 절로 나왔다.
괜히 거실을 서성이다가 창문을 열었다.
밖은 평소처럼 분주했다.
회사로 향하는 사람들, 배달 오토바이, 시끄러운 공사 소리.
세상은 여전히 일하고 있는데,
나만 멈춰 서 있는 것 같았다.

커피를 내리면서 생각했다.
앞으로는 내가 나를 ‘월급날’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걸.
누군가의 시스템 안에서 돌아가던 톱니가 아니라,
내가 직접 만들어가는 하루하루가 결국은 내 월급이 될 거라는 걸.

아직은 두렵다.
하지만 이 두려움조차도 내 시간 속에서 마주하고 있다는 게
조금은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.

오늘은 급여 알림이 오지 않는 첫날이다.
그게 낯설고 허전하지만,
어쩌면 나를 새로운 길로 몰아붙이는 가장 솔직한 신호일지도 모른다.